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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6. 23:22

추억속의 영산포 다리 건너 거리 풍경..

추억속의 영산포 다리 건너 거리 풍경.. '죽전골목' 이라고 불리던.. 영산포 시장으로 넘어가는 골목, 희망 참기름집이 보인다.^^ 영산포 장날이면 골목 양쪽으로 상인들이 물건을 내려놓고 흥정이 오가던 그런 추억의 골목으로 기억된다. 맨 아래 초입에서 뻔데기와 다슬기를 팔았던것으로 기억 됨^^ 아마 지금도 이 골목은 남아 있을것 같다.

2023. 10. 16. 23:22

추억속의 영산포 다리 건너 선창 초입과 주변..

추억속의 영산포 다리 건너 선창 초입.. 일제 강점기이던 1922년에는 영산포 등대옆에 '영산구교'라는 나무 다리가 있었다. 과거 개울에 많이 세웠던 섶다리처럼 나무를 A자로 촘촘히 세워 영산강을 가로지른 모습이었다. 영산포 선창 옛 사진을 보면 다리 기둥들이었던 굵은 나무 말뚝들이 강물위로 비쭉 나온 모습이 보인다.

2023. 10. 16. 23:22

추억속의 영산포 다리..

추억속의 영산포 다리.. 과거를 거슬러 올라 가면서 영산포 다리와 관련 역사를 찾아봤다. 고려시대 수운의 발달로 형성된 영산포는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고려 때 진이 설치돼 있었으며 조선 때는 영산창(榮山倉)이 설치돼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영산포 선창을 통해 호남지역 곡창지대의 곡물과, 광산지역의 광물 등을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통로가 되는 비운을 겪었다. 영산강에는 내륙의 강에 유일하게 등대가 세워져 있다. 일제가 조선의 자원을 해상으로 수탈해 가기 위해 세워진 뼈 아픈 사연의 등대이기도 하다. 1897년 목포항 개항과 함께 전라남도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영산강 하구둑(1978착공~1981년 12월 완공)이 생기기 전에는 영산포 선창에 많은 배들이 오고 가며 물류 해상운송과 ..